성년후견제, 의사결정지원제로 전환해야
성년후견제, 의사결정지원제로 전환해야
성년후견제도폐지추진연대, 공식 출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 12개 단체로 구성된 ‘성년후견제도 폐지추진연대(이하 성폐련)’가 공식 출범했다.
성폐련은 4월 6일 이룸센터에서 출범식 및 출범기념 토론회를 열고, 성년후견제도의 대안으로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성년후견제는 민법상 금치산제도와 한정치산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 질병이나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법률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사실상 곤란한 사람에 대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 대리하는 제도로, 2013년 7월부터 시행했다.
그러나 성폐련은 성년후견제가 장애인의 어려움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제한해 학대받는 장애인을 옭아매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제도가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치매노인, 노숙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과 소수집단 전체에 광범위하게 시행돼 곳곳에서 인권이 위협받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또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제10조, 제11조 제1항, 제27조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2, 13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발달장애인법 제12조를 위반하는 모순된 제도라고 소리 높였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한국정신장애인연대 박미선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기능적인 부분이 떨어진다고 해서 당사자의 권리, 의지, 선호도를 파악하려는 노력 없이 손쉽게 성년후견인이 당사자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전근대적 발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서 “몇 달 전 UN장애인인권위원회도 우리나라에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라는 권고를 한 만큼 성년후견제 폐지운동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이행운동이 되어 국제적 규약의 근거를 두고, 심도 높은 이해와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순천향대학교 작업치료학과 정봉근 교수는 성년후견제의 대안으로 조력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조력의사결정지원제도란 단순히 특정한 성인의 도움으로 의사결정을 대신하기보다 당사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인적 물적 지원을 통해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장점은 장애인 당사자가 주어진 정보를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일부 장애인들이 은행 업무, 의료 서비스 결정 등에서 자신을 대신해 후견인 역할을 하는 사람도 필요할 수 있다”고 밝히고 “이 경우 누군가의 힘을 빌려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닌 장애인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법률적 활동 보조인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스스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 사회활동 참여를 통해 의사결정능력을 길러야 하고, 사회 전반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락우 소장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사결정을 하는데 오류를 범한다”며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매순간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산다”고 성년후견제의 가정을 반박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류나연 투쟁부위원장은 “장애인의 의사결정시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하다면 개인적으로 한사람이 지정되는 것은 위험성이 있다”며 “전문적인 역할을 맡아 줄 단체를 만드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더불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개정해 성년후견제도의 문제점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장애인복지법도 개정해 의사결정지원제도 제공을 명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른 토론자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윤삼호 정책실장은 “조력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주장하거나 그와 같은 조력 네트워크를 만들려면 노력과 돈이 든다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기존 후견인 모형에도 그만한 돈은 들어간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이 제도는 추가 지출이 아니라 기존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성폐련은 이후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위헌심판을 제기하고,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한편 의사결정지원제도의 도입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