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패럴림픽서 '인생 2막' 시작
영화 스텝, 뮤지컬 배우 등 이색 참가자 눈길
아프간 여자 장애인 태권도 선수 감동사연도
[소셜포커스 윤현민 기자] = 2024 파리패럴림픽 대회(장애인올림픽)가 이제 코 앞이다. 개막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선수단도 하계올림픽 태극전사의 잇따른 승전보에 잔뜩 고무됐다. 특히, 역대 최저 성적인 2020 도쿄대회 부진을 씻겠다는 각오다. 각 종목 메달 유망주를 필두로 선수단 전체가 혼연일체된 모습이다. 이 중 인생 2막으로 만개를 준비하는 이색 참가자도 눈에 띈다. 영화스텝, 뮤지컬 배우, 난민 등 저마다 속 깊은 사정을 갖고 있다.
2024 파리패럴림픽 한국대표 선수단. ⓒ대한장애인체육회
파리패럴림픽서 도쿄대회 ‘부진’ 씻는다
내달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제17회 하계패럴림픽이 시작된다. 9월6일까지 패러 육상 등 23개 종목에서 549개 경기가 열린다. 총 참가규모는 184개국 4천400명 정도다. 한국은 17개 종목 83명 포함 총 170여명 선수단을 파견한다. 목표는 금메달 5개 이상, 종합 순위 20위권 진입이다.
보치아, 탁구, 사격, 배드민턴, 태권도가 주력 종목이다. 우선 보치아 BC3 페어 강선희·정호원, 탁구 MS1 주영대, WS2 서수연, 사격 SH1(P4) 권총 조정두, SH1(R1) 소총 박진호가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이밖에 배드민턴 남자복식(WH1&WH2) 최정만·김정준, 남자 단식(WH2) 유수영, 탁구 WS3(단식) 윤지유, 태권도(K-44) 80㎏급 주정훈, 사격 SH1(P3) 권총 김정남, SH1(R7) 소총 박진호, SH2(R4) 소총 서훈태, SH2(R5) 소총 이철재도 메달 기대주다.
이들 모두 한국 장애인 스포츠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한국은 1988~2008년 대회에서 6회 연속 두 자릿수 금메달을 땄다. 1988년 서울패럴림픽에서 금40 은35 동19개로 역대 최고인 7위를 기록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도 금11 은15 동18개를 따며 15위에 올랐다. 이후 1996 애틀랜타, 2000 시드니,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대회에서 각각 금13·은2·동15(12위), 금18·은7·동7(9위), 금11·은11·동6(16위), 금10·은8·동13(13위) 성적을 거뒀다.
그러다 2012 런던 대회부터 하락세를 탔다. 당시 금·은·동 각 9개씩 획득해 12위를 마크했다. 한 자리 수 금메달을 딴 건 1988년 이후 처음이다. 이후 2016 리우데자이네루에서 금7, 2020 도쿄 대회에선 금2 획득에 그쳤다.
대표팀 선수단은 내달 14~26일 파리 동남부 크레테유 메종 드 핸드볼에서 현지 적응과 컨디션 조절을 위한 사전캠프를 통해 마지막 점검에 나선다. 이 가운데 독특한 이력의 인생2막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휠체어 펜싱 국가대표 조은혜. ⓒ대한장애인체육회
영화 스텝에서 최고 ‘휠체어 검객’ 우뚝
먼저 영화 스텝 출신의 휠체어 펜싱 국가대표 조은혜(39) 선수다. 그는 2017년 낙상 사고 전까지 충무로에서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다. 2017년 개봉해 관객 680만 명을 모은 영화 범죄도시가 대표작이다. 당시 분장팀장으로 참여해 마동석 등 주연 배우들 스타일을 책임졌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굿바이 싱글’ 출연배우도 그의 손 끝을 거쳤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스타일리스트 인생은 사고로 한 순간에 뒤바뀌었다.
이 때 척수를 크게 다쳐 하반신 마비 진단을 받았다. ‘다신 걸을 수 없을 것’이란 담당의사 말에 절망했다. 휠체어 타고 촬영현장을 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배우들 분장도 온전히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인생 1막은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러다 우연히 인생 전환점의 계기를 찾았다. TV 속 휠체어 펜싱 경기가 삶의 열정을 되살렸다. 조 선수는 “내게 맞는 재활운동 종목을 찾던 중 TV 뉴스에서 하얀 펜싱복을 입고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 무작정 장애인펜싱협회에 연락해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평소 남다른 승부욕으로 성장세도 가파랐다. 펜싱 칼 끝에 맞아 온 몸이 멍투성이여도 개의치 않았다. 그 결과, 대회 출전 두 번째만에 입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그는 “첫 출전한 대회 첫 경기에서 상대선수로부터 일방적으로 공격을 허용하면서 졌다. 이후 오기가 생겨 두 번째 출전한 대회에선 3등을 하며, 그동안 비장애인으로 생활할 때는 경험해보지 못한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장애인이 된 뒤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는데 펜싱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이 회복됐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자신감을 갖고 선수생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의지와 노력으로 최고 휠체어 검객으로 성장했다. 그는 지난해 열린 국내·외 대회에서 다관왕을 차지했다.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했고, 2023 전국장애인체전에선 3관왕에 올랐다.
양손잡이인 그는 왼손으로 펜싱 칼을 잡는다.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인 휠체어펜싱에선 큰 장점이다. 또, 10년 이상 호흡 맞춘 지도자까지 있어 더 든든하다. 그는 “제가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10년 이상 함께 한 박다영 감독님이 곁에 있어 마음 든든하다. 저보다 10살 어리지만 항상 많은 가르침을 준다”며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함께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했다.
이젠 당차게 세계 무대 제패까지 노린다. 그는 “애초 사고가 나기 전엔 상상도 못했던 삶이지만, 이제 국가대표로 패럴림픽에 출전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며 “금메달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해 파리에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장애인 여자 골볼 대표팀 주장 김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장애인 골볼’ 대표+‘뮤지컬 배우’ 인생 이모작
다음 주인공은 장애인 여자 골볼 대표팀 주장 김희진(29)이다. 그는 체육과 예술 모두에서 남다른 실력을 뽐내며 주목받는다. 우선 처음 골볼을 배운 건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이후 고교 진학 후 재학 중 이미 국가대표에 뽑혔다. 그런 뒤 성장을 거듭하며 대표팀 주축선수가 됐다. 골볼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다. 소리 나는 방울이 든 공을 상대 팀 골대에 넣는 운동이다. 모든 선수는 안대를 끼고 눈을 가린 채 경기를 치른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한다. 어릴 적 두각을 보인 음악재능의 발현이다. 6살 때 시각 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남다른 청각 능력을 바탕으로 음악적 소질을 발견했다. 이후 20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뮤지컬 배우로 활약했다.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는 이모작 인생인 셈이다. 이런 다재다능한 활동에 스스로도 꽤 만족해 했다. 김희진 선수는 “골볼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자아를 찾을 수있는 무대이고, 뮤지컬 역시 또 다른 자아를 찾을 수 있는 훌륭한 무대”라며 “두 가지 활동을 함께 하면서 인생의 활력을 몸소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러던 중 2022년 뮤지컬 배우 활동을 중단했다. 대표팀에서 그의 역할과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다. 특히, 2022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활약이 돋보였다. 이 대회에서 대표팀은 주장 김희진을 앞세워 결승에 진출했다. 당시 포르투갈 마토지뉴스에서 열린 ‘2022 국제시각스포츠연맹(IBSA) 골볼 세계선수권대회’ 캐나다와 준결승에서 5-2로 이겼다. 한국은 캐나다에 선취점을 내줬지만, 전반에만 3골을 몰아넣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이 경기 승리로 패럴림픽 출전권을 확보했다. 결승에선 도쿄패럴림픽 챔피온 터키에 4-10으로 졌다. 하지만, 16년 만에 세계대회에 출전해 거둔 최고 성적이다.
이후 김희진은 패럴림픽 무대만 바라보고 있다. 온 신경을 패럴림픽에 집중하고, 뮤지컬 무대는 머릿 속에서 잠시 지웠다. 김 선수는 “한국 골볼 대표팀이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건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이후 28년만인 만큼 패럴림픽 출전이라는 기적에 이어 패럴림픽 메달 획득의 기적을 쓰기 위해 오로지 골볼 훈련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팀 주장의 중책도 잊지 않았다. 훈련장 안팎에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도맡는다. 그는 “대표팀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어린 선수들도 있는데, 스스로 ‘꼰대’를 자처하고 있다”며 “골볼은 앞을 볼 수 없는 선수들이 출전하는 종목인 만큼 팀워크가 매우 중요해 훈련 코트는 물론 평소 밖에서도 동료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간 흘린 땀과 노력으로 키운 자신감도 충만하다. 김 선수는 “한국은 객관적인 전략상 하위권 팀으로 분류되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강호 일본, 캐나다를 연파한 경험이 있는 만큼 잘 준비하면 파리 패럴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며 “이번 대회 출전 티켓을 딴 2년 전부터 모두 열심히 준비했기에 충분히 자신 있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 장애인태권도 선수 쿠다다디. ⓒ대한장애인체육회
아프간 난민 장애인 태권도 선수 감동 사연
내전 중인 고국을 떠난 난민 선수도 빼 놓을 수 없다. 감동 사연의 주인공은 장애인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5·여)다. 그는 왼팔에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태권도 꿈을 키워갔다. 자국 최초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로훌라 니크파이가 그의 롤 모델이다. 니크파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58㎏급에 출전해 동메달을 땄다. 아프가니스탄 선수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다. 쿠다다디도 이 모습을 보고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그의 선수생활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외세 침략과 끝 없는 내전 등 수난의 역사가 이어졌다. 1979년엔 소련의 침공으로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다가 무너졌다. 그런 뒤 1994년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앞세운 엄격한 통제 사회가 됐다. 이후 2001년 탈레반 정권은 미국의 대규모 침공으로 붕괴됐다. 9.11 테러 배후인 알카에다 조직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댓가다.
그러다 2021년 탈레반이 다시 수도 카불을 장악하면서 위기가 고조됐다. 그 해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개막이 임박한 시점이다. 이 때 쿠다다디는 세계태권도연맹(WT) 도움으로 카불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이후 파리를 거쳐 일본으로 입국해 2020 도쿄 패럴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 선수론 첫 패럴림픽 참가다. 당시 그는 여자 49㎏급에 나와 16강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 하지 않았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훈련에 구슬땀을 흘렸다. 그 결과, 유럽선수권을 제패하며 감동 스토리를 썼다. 그는 지난해 8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유러피언 파라 챔피언십 2023 태권도 여자 47㎏급에서 우승했다. 당시 각국 언론도 그의 감동 사연을 앞다퉈 타전했다. 이로써 아프가니스탄 장애인 스포츠의 상징이 됐다.
쿠다다디는 이번 대회에도 난민팀 소속으로 출전한다. 난민팀은 쿠다다디 포함 총 8명의 선수와 1명의 가이드 러너로 꾸렸다. 그 밖에 시각장애 육상선수 기욤 주니어 아탕가나(카메룬), 장애인수영선수 이브라힘 알 후세인(시리아) 등도 난민팀 일원으로 파리 패럴림픽에 나선다.
출처 : 소셜포커스(SocialFocus)(http://www.socialfoc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