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휠체어 장인, 휠라인 금동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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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휠체어 장인, 휠라인 금동옥 대표

한국지체장애인협회 0 3137



휠체어 장인 금동옥 대표를 만나다

국내 유일 휠체어 맞춤 제작 업체 ‘휠라인’



휠라인 금동옥 대표와 김경자 실장.

보조기기는 장애인의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 맞추기 위해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 또 시간이 지난 후 에도 다시 내 몸과 상태에 맞춰 조절해 줄 필요도 있다. 그러나 수입에 의존하던 국내 보조기기 시장에서는 이러한 사후관리까지 지원받기가 쉽지 않았다. 본지에서는 자체 개발 및 디자인으로 출사표를 던진 국내 휠체어 업체가 있어 취재해 봤다.

절망 끝에서 발견한 희망
“사람 살려!”
인적이 드문 곳에서 한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길을 지나던 청년은 위험에 처한 여성을 도우러 달려가 괴한을 막아섰다. 가까스로 그녀를 구해냈지만 청년은 괴한의 흉기에 찔려 하반신마비,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그 청년이 바로 ㈜휠라인 금동옥 대표다. 20여 년 전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한동안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다. 한없이 절망스러워 집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밖에 나와 보니 많은 장애인들이 활발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운전을 하고, 운동도 즐기는 장애인을 보며 금 대표는 재활의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이때 금 대표는 재활병원에서 자원봉사를 온 한 여고생을 만났다. 그 여학생은 지금의 아내이자 휠라인을 이끌어가는 사업파트너인 김경자 실장으로, 잘생긴 외모에 건실한 금 대표에게 매력을 느꼈다. 금 대표도 밝고 풋풋한 소녀에게 끌렸지만, 어린 학생이기에 애써 멀리했다. 그러나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난다는 말처럼 7년 후 그들은 우연히 다시 만났다. 서로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정식 교제를 하게 됐다. 함께 하며 행복감을 느낀 둘은 결혼을 결심했다. 둘의 사랑에는 아무 장애가 없었지만, 부모의 반대가 컸다. 금 대표를 놓칠 수 없었던 김 실장은 가출을 감행했고, 1년 후 당당히 결혼 허락을 받아냈다. 

한국인의 체형과 장애 유형에 맞는 휠체어 개발
금 대표의 인생은 힘겹게 한 결혼만큼이나 사업에서도 굴곡이 많았다.
장애를 얻고 처음 취직한 곳은 휠체어 판매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려한 말솜씨를 뽐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대신 다치기 전에 배운 자동차 정비 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휠체어를 수리해 줬다. 그러면서 휠체어를 대부분 수입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제대로 된 수리나 보상을 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수입 휠체어가 가격은 비싸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장애인의 몸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금 대표는 직접 휠체어를 제작해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입 휠체어를 사서 구조를 뜯어보며 우리나라 사람의 신체와 장애 유형에 맞는 휠체어를 제작했다. 연구 시작 2년 만인 2001년 정식으로 맞춤 휠체어 사업을 시작했지만, 당시 이름 없는 국산 휠체어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러 번 망하고도 금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휠체어를 구입한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며 “판로 개척이 어려워 힘들 뿐이지 제품의 재료와 성능, 1mm의 오차도 없도록 제작한 제 정성까지 모두 통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로지 더 좋은 휠체어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공장과 제작에 과감한 투자를 하던 금 대표에게 가처분 명령이 밀려들었다. 아내 김경자 실장은 10년 넘게 일해 온 사회복지사를 그만 두고, 남편에게 날아 온 낯선 서류들을 함께 수습하려 고군분투했다. 결국 부부가 힘을 합쳐 기업회생절차까지 밟은 끝에 다시 일어났다.

스포츠형 휠체어 개발…수입에 의존하던 시장 바꿔
금 대표는 2007년 일상 활동형 휠체어만 만드는 게 아니라 스포츠형 휠체어 제작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당시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은 고가에 수리도 어려운 수입품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선수들의 사정을 알게 된 금 대표는 스포츠형 휠체어 개발에 매진했다.

처음 내 놓은 제품은 럭비휠체어였다. 럭비는 경기 자체가 계속 부딪히는 종목이라 지속적으로 수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수입 제품이라 크고 작은 수리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이 많았다. 금 대표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제작했다.

제품을 처음 내 놓았을 때, 선수들은 반신반의했다. 과연 튼튼하고 편할지 의문을 보내는 선수들에게 금 대표는 우수한 기술력과 민첩한 사후관리로 화답했다.
그 후 종목을 다양하게 넓혔고, 지금까지 해마다 많은 선수들이 휠라인 휠체어를 탄 채 메달을 거머쥐고 있다. 2014 인천장애인아시경기대회에서도 휠체어농구, 럭비, 펜싱 등 거의 모든 종목에서 100여 명이 넘는 선수들이 휠라인의 휠체어를 사용했다.

1999년 방콕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이후 15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건 휠체어농구의 경우 대표선수 5명 중 4명이 금 대표가 만든 휠체어를 타고 경기에 나섰다. 금 대표는 선수 개인의 특성에 맞춘 휠체어를 제작했고, 훈련 중 빈번한 고장에도 무상으로 수리하며 선수들을 묵묵히 지원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사상 최초로 금메달 72개, 종합 2위로 역대 최고 성적을 낸 데는 금 대표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

장애인 스포츠단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휠라인은 기업의 특색을 살린 사회공헌 활동도 펼치고 있다. 각종 장애인 체육대회에 경기용 휠체어를 무료로 제공하는가 하면, 럭비·펜싱·테니스 등 장애인 스포츠단을 운영하고 있다.

금 대표는 “비용 측면으로만 보면 실업팀 운영이 부담이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량을 갈고닦아 멋진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게 보람 있다”고 말한다.

휠라인 스포츠팀 선수들은 다른 종목 실업팀에 비해 적은 지원금에도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 값진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내는 투지를 보여줬다.

이밖에 저소득 소외계층에 휠체어를 무상 지원하고,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적이다. 직원 중 60%는 중증장애인이다. 높은 장애인 고용 비율을 유지하며, 스포츠 휠체어 시장을 개척해 장애인복지 향상에 기여한 휠라인은 2011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또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2012년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표창을,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제 금 대표는 수출포상을 받는 것이 목표다. 그동안 쌓은 기술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그는 “개인의 특성을 살린 맞춤형 휠체어로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휠체어 제작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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